안녕하세요! 홈페이지에서 새롭게 인사드리게 된 욕부기예요. 🤗
새롭게 욕망한입을 시작하는 만큼 주인공으로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재회상담 회사 '아트라상'의 대표이자, 책 '악인론'의 저자 손수현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오늘 손수현 작가님의 칼럼을 읽고 나면 '지식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떤 건지 생생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어머니 기억을 찾아서'를 읽어 보세요!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악인론의 저자 손수현입니다.
오늘은 8년간 상담을 하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의 이야기를 써 볼까 합니다. 상담사의 사적인 이야기는 결코 오픈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공개하네요.
제가 갖는 상담 철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네가 할 수 없는 것을 남에게 요구하지 말아라' 입니다. 상담을 받는 사람들에게 '이성을 찾아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저는 사기꾼이랑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모르겠지만 오래된 내담자 또는 개인적으로 저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흥미로우실지 모르겠군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사용하는 모든 상담 기법, 재회심리학 이론들을 다 도입해서 문제를 해결한 케이스라 보여지기도 합니다.
종종 제가 재회 상담에서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지침을 설명 드리면, 아주 극소수의 내담자분들은 예의상 겉으로는 절대 티내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갖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그게 맞다지만..너라면 몇 년을 사랑한사람에게 그런 문자를 보낼 수 있어? 남의 일이니까 강하게 나가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넌 그래 본 적 있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되는 칼럼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의 일이라고 쉽게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을 백 번 이해하지만, 그래도 재회 확률을 높이기 위해 저 역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억을 찾아서
2015년에 저에게 상담을 신청했던 분들은 기억하실 지 모릅니다. 제가 처음으로 모든 상담을 1주일 뒤로 미루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당시 저에게 모든 상담이 몰려 있어서 3주 가량 상담이 지체되고 있었는데, 한 분 한 분 양해를 구해가며 전화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죄송하네요.
심리학을 토대로 인간 관계를 다루는 사람으로서는 부끄럽지만, 어머니와 30분가량 전화로 크게 다투었습니다. 거의 모든 일상이 상담에 집중되어 있고, 지침을 수없이 구상하고제시할 때이니, 어머니에게 얼마나 독하게 얘기했는지 모릅니다.
불편한 전화를 마무리하고, 10분 뒤 어머니가 전화를 다시 하셨습니다. 화해를 요청하는 줄 알고 '미안했어 엄마' 하고 전화를 받자, 어머니가 되물으시더군요.
"혹시 내가 방금 너와 전화 통화를 했었니?"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일단 '아 그냥 잠깐 사소한 통화했었는데 별것 아니었다. 나도 엄마한테 지금 들으니까 생각났다'고 어영부영 안심시킨 뒤, 전화를 끊었습니다.
30분간 서로 초집중하여 다퉜는데 아예 통화한 사실 자체를 잊으신 것입니다. 여러 차례 되물으셔서 정말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별 일 아닌 것 같아 보이실 수 있겠으나,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난생 처음 본 상황에서 도저히 침착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이별 통보를 받은 것처럼 펑펑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오듯이 어머니는 이제 모든 기억을 잃어 가실 것이고, 끝내는 저의 이름조차 잊고 살아갈 것이라는 불안감에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왜 굳이 그런 못된 말만 골라서 했던 건지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당장 10분 뒤에 예정된 상담을 도저히 진행할 수 없어 거듭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상담을 미룬 뒤 혼자 생각에 잠겼습니다.
혼자 울기를 몇 시간을 반복하고, 저는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명색이 수석상담사이고, 패닉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성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담자들에게 '재회는 떠먹여드릴 지 몰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누누이 말하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내가 못하는 걸 남한테 시키는'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성을 찾아야 했습니다.
일단 당시에 〈이상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대로는 '치매'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병은 아니었습니다. 평소에 어머니의 미세한 행동이나 언어습관 등을 보았을 때, 전조 증상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지속적으로 글을 다루고 머리를 써야 하는 직업군에 속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상황은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소망적 사고'일 수 있었습니다. 저 혼자 어떻게든 희망 회로를 돌려서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재회 상담을 몇 년간 하면서 느낀 것은 어떤 분야든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고 결론을 내리는건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심리학을 아무리 공부했다고는 하나, 정신과 의사분의 의견보다 제가합리적일 순 없었습니다. 결국은 병원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전화를 마무리했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당황한 미세 목소리나 어투에서 불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당연히 통화 목록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저보다 훨씬 더 빨리 부정적인 결론에 다다랐을 것입니다.
여기서 병원을 가자고 권유하는 것은? 어머니 입장에서 100% 거절할 것입니다. 치매 확진이 예측되는 상황에 병원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내담자들을 숱하게 만나왔기 때문에, 어머니의 감정을 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⑴ 1주일간 어머니에게 절대 연락을 하지 않고, 가족 단톡방에서만 아무 일 없는 듯 말했다 ⑵ 바로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고 병원을 예약했다 ⑶ 어머니가 할 대사들을 미리 예측하여, '카운터 펀치'를 미리 준비했다 |
그러나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상황은 악화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위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하나 그 근거에 대해 설명을 드려 보겠습니다.
첫째로, 어머니는 이미 저보다 훨씬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저까지 심각해지고, 불안해한다면? 어머니는 절대 좋은 생각을 갖지 못하실 것입니다.
이는 설령 어머니가 이미 실제로 심각한 치매에 걸리신 상태였다고 해도 좋을 리가 없습니다. 더 악화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천하태평한 느낌을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단톡방에서 재밌는 뉴스 거리나 공유하고, 아버지에게 종종 농담을 던지면서 대화만 이어갔습니다.
(당연히 아버지에게는 모든 상황을 공유하였고, 절대로 어머니를 흔들지 말고 저의 작전에 장단을 맞춰 달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어떤 말도 없으셨지만, 3일, 4일이 지나면서 점차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냥 '없던 일'처럼되어 버린 것입니다. 실제로 그 이후에 증상이 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도 '그냥 한 번 그랬던 건가보다' 생각하시면서 점차 농담에도 참여하시고 웃는 비율이 늘어났습니다.
이것으로 1차적으로 어머니를 안정시켰고, 병원에 모셔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안정을 찾는 대로 '집밥 좀 먹고 싶다'는 핑계로 몇 달만에 본가를 찾았습니다.
둘째로, 저는 어머니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로 미리 대학병원의 교수님께 예약을 해 두었습니다. 어머니는 어차피 제가 어떠한 논리를 세워도 거절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은 '내가 정신 질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매우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머니 역시 다를 리 없었습니다.
심리학에 '문간에 발 들여놓기' 라는 기법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병원에 가자. 어서 빨리 예약하자' 라고 말한다면, 거절하실 것입니다. 너무나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약이 되어 있으니 가야 한다' 라고 말한다면, 예약을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사라지게 됩니다.허들이 하나 사라지면서 거부감이 덜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 입장에선 무엇이든 불편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검사를 받아서 나쁠 건 없었습니다. 저 역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지만, 최대한 병원에 빨리 가는 게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유리할 것이 확실했습니다.
어머니는 당연히 취소하라고 난리가 나셨고, 저는 담담하게 카운터 펀치들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면서도 심장은 쿵쿵 뛰고 미칠 것 같더군요. 내담자들이 행동 지침을 수행할 때 떨리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셋째, 카운터 펀치. 어머니는 저의 예상 범주 내의 반론을 시작했고, 저는 천천히 카운터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포인트는 준비하지 않은 것처럼, 그냥 즉석에서 나온 것처럼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웃기도 하고, 일부러 톤을 낮추고, 말의 속도를 느리게 하며 무의식 중에 어머니를 안심시키며 답변을 해 나갔습니다.
1 어머니 | "도대체 왜 별 것도 아닌 일로 대학병원까지 검사를 신청했냐! 난 갈 수 없다!" 손수현 | "그렇지. 엄마가 나 어릴 때 별것도 아닌 일로 주사 맞히러 갔던 거랑 똑같잖아. 그냥 가는 거야.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나도 얼마전에 종합 검진 갔다 왔는데 그거랑 같은 거야 엄마." |
해석 정신과 진료를 받는 일 = 어릴 때 아들을 주사 맞히러 병원에 데려갔던 일 수준으로 떨어뜨림으로써 거부감을 줄임 |
2 어머니 | "엄마가 정말 치매면 어떡할 거니.. 그 땐 양로원에 꼭 넣어라" 손수현 | "진짜 별 말을 다한다 엄마. 당연히 그러긴 해야지? 근데 그럴 확률은 없어. 이미 모든 의료계 종사하는 내담자분들한테 따로 다 물어봤네요. 그 때 자세한 상황까지 다 얘기했어.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그냥 일시적으로 발현하는, 우리 입장에선 당황스럽지만 전문가분들 관점에선 흔한 증상이래." 그리고 내 친구 진원이 어머니도 아예 증상이 똑같더만. 그냥 갔더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여행 좀 다니라고 진단받고 왔더라. 소설 좀 그만 써 엄마(웃으면서)" |
해석 의료계 종사하는 내담자 분들의 권위 있는 증언을 토대로 신뢰를 쌓음. 또한, '내 친구 어머니도 똑같다'는 기법을 통해 거부감을 줄임. 많은 사람들은 과학적 이야기보다, '내 주변 누구가 갔다 왔더라!' 한 마디를 더 신뢰하기도 한다. |
3 어머니 | "엄마가 너에 대해서 다 잊어버리면 넌 어떻게 살거야?" 손수현 | "글쎄... 엄마 미안한데 난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이 안되네? 만약 그렇다고 해도 난 잠깐 슬퍼도 그것대로 그냥 살 거 같은데... 내가 공감 능력이 없는 건가? 뭔가 그냥 나는 내 인생 살고 종종 엄마한테 '나 엄마 아들이오' 그 때 그 때 알려주면 되잖아?" |
해석 어머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자신이 모든 기억을 잊게 되면, 혼자 남은 아들은 미친듯이 슬퍼할 것을 불안해한다. 따라서, 싸이코패스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아들은 오히려 담담해야 한다. |
몇 번 대화를 나눈 뒤, 어머니는 약간은 이성을 찾은 듯 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아들이 생각하기에 확률은 어떠한 지를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정신과 진료의 전문가가 아니지만, 무언가 담담한 모습에 믿음이 생기면서 저에게 의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며칠간 미친듯이 연구한 것들을 토대로 담담하게 '그럴 확률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 그때서야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제가 어머니를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바로 괜찮을 확률과 그 근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면, 어머니는 '병원에 가게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희망적인 말만 골라한다'고 의심하며 저를 믿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긴 대화를 끝내고, 어머니는 무언가 안심을 하신 듯이 웃으며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내일 병원에 가기 전 어머니가 갑자기 돌연 취소하실 수 있으니, 일어났을 때 '평소와 늘 같은 날처럼 느끼시게끔' 모닝 커피 한 잔을 꼭 준비해주세요" 라고 말한 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도저히 아버지의 기분까지 챙길 여력은 없었습니다.
자리에 눕자 어머니에게 했던 마음에도 없던 말들이 떠오르면서 미친듯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가 정말 기억을 잊게 된다면 도저히 쿨 할 자신은 없었습니다.
과거 내담자 시절 했던 것처럼, 저는 제가 가장 이성적일 때썼던 상황 분석 글을 읽으며 애써 이성을 찾았습니다.
안타까웠던 것은 너무나 힘든 상황인데 누군가에게 전화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위로는 받을 수 있겠지만, 오직 저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 난감한 것은, 병원에 가기 전 저는 당장 상담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사연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천만다행인 것은 쉬운 케이스들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확률 진단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마주하다
30분간 전화를 통해 싸웠던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린 어머니를 위해, 저는 심리학적으로 몇 가지 전략을 세웠습니다. 처음엔 결사반대를 하셨지만, 다행히 전략이 먹혀 들어 어머니는 병원행에 동의하셨고, 차를 타고 병원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너 그거 기억나니? 옛날에 어릴 때 네가 덮는 이불에 네가 이름 붙였었잖아. 포근하고 따뜻해서 '양털이' 라고 불렀는데..."
"너 고등학교 때가 생각나네. 그 때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주제로 글을 써서 장관상 받았다고 좋아했잖아"
"예전에 우리 가족 다 같이 제주도 여행 갔을 때..."
어머니는 과거의 기억들을 필사적으로 꺼내고 계셨습니다. 오랜 기억들을 꺼내어, 자신이 치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가슴이 더욱 아파왔습니다. 코가 시큰하고 눈물이 당장이라도 뚝 떨어질 것 같은 것을 참으며, 억지로 웃으면서 분위기를 맞춰가며 병원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유명한 대학병원이니 당연히 예약은 밀리게 되었고, 초조함은 가중되었습니다. 드디어 어머니의 이름이 호명되었고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진료실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정신과 의사분께서는 상황을 듣고 몇 가지 질문을 하신 뒤, '일시적인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정확한 건 검사를 해봐야 알겠습니다'라고 짤막한 답변을 하셨습니다. 이는 제 입장에서 예상 범주 내였습니다.
의사분들은 다소 보수적으로 답변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기 때문입니다. 낮은 확률로 큰 병일 수도 있는데 검사를 하지 않아 이를 진단해내지 못한다면 병이 커질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여 환자를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 때 옆에 계셨던 아버지가 불쑥 말을 꺼내셨습니다.
"그래서 병원비 보험 처리는 어떻게 됩니까?"
저는 크게 당황했습니다. 어머니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다보니 미처 아버지를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저에게는 '검사를 해봐야 안다'는 전문가의 진단이 당연한 것으로 느껴졌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달랐을 것입니다.
부모님께서는 '그냥 큰 병 아닙니다' 라는 말을 듣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의사분의 진단이 야속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일종의 '자존심 발동'이 되어 대뜸 어떠한 질문도 없이 병원비 보험 처리를 먼저 여쭌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 이는 의사분께 큰 실례라고 느껴졌습니다.
당연히 의사분의 표정은 순간 크게 굳었고, "간호사와 얘기하세요. 나가보시구요." 라는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었습니다. 제가 손수현 상담사로서 상담을 7년간 진행하면서 느꼈던 것이 있었습니다. 전문가가 내리는 진단은 야속하더라도 전문가의 탓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분석해주는 의사분께 그 책임 소재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의사분과 적대적인 관계를 지게 된다면, 앞으로의 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이 없었습니다. 설령, 최악의 상황이라도 앞으로 치료를 주기적으로 받을 수도 있는데 얻을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급하게 "어머니 아버지, 먼저 나가 주시겠어요? 그리고 선생님.. 괜찮으시다면 저에게만 혹시 2분의 시간 정도를 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의사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고, 부모님은 진료실 방문을 나가셨습니다.
저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우선 저희 아버지께서 크게 결례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려 주시기 위해서 검사를 하자고 하신 것이고, 도와 주시려고 하신 말씀인데.. 아버지가 이런 큰 병원에 오시는 게 오랜만이다보니 크게 긴장하셔서 그런 말이 불쑥 나온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해도 정말 큰 실례입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그런데도 귀한 시간을 2분 정도 따로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많이 바쁘실 것 같아서 몇 가지만 여쭤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어머님께서는 안전한 진단을 받고 싶으셔서 거짓말을 하셨지만, 음주를 꽤 오랜 시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단에 혹시나 영향을 미칠까 하여 질문을 드립니다.
둘째로, 저희 집안에 유전력은 따로 존재하지 않긴 합니다. 외갓댁에서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분들은 따로 계시지 않았고, 어머님이 이런 증상을 보이신 것도 평생 처음이긴 합니다.
셋째로, 전문가이신 선생님께 제가 감히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아주 혹시라도 부담감을 느끼신다면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꼭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저렇게 말씀하셨다고 해도 제 입장에선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저희를 도와주시는 분이시고, 저는 오늘 진단을 해 주신 것만으로, 시간을 내 주신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의사분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으시곤, 한참을 가만히 계시다가 한 마디를 남기셨습니다.
"아드님이 참 효자시네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하지 않으셨던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환자의 입장에선 많이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정신과 의사 일을 하시면서 너무나 많이 보는 케이스며, '일과성 기억상실' 로 매우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일 것에 가까울 것이라는 점도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음주 하나의 변수만으로 전반적인 진단이 모두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얘기도 해 주셨습니다.
저는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거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고개를 숙이고는 진료실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이 사실을 전달해 드렸고, 의사분이 그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침착하게 이야기를 들으시곤, 고개를 끄덕이셨고 '생각해보니 정말 죄송한 일이구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검사를 받는 동안 며칠간 병실에 입원을 하게 되셨고, 저는 시종일관 유쾌한 이야기들로 기분을 풀어드리려 노력했습니다. 그 시기에도 집과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상담을 진행하였고, 안타깝지만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따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저의 노트북 검색창에 '부모님 여행지' '어머니 선물', '일과성 기억상실'이 하루하루 늘어갈 뿐이었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날 밤, 저는 이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마지막 행동 지침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확진이 나오더라도 최대한 어머니의 스트레스를 덜어드릴 수 있게끔 모든 제 지식을 총동원했던 그 때의 간절함만 기억이 납니다.
또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혼자 가야 하는가 온갖 생각들로 복잡했습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해도 들킬 가능성이 커 보였고, 결국 같이 들어가서 진단을 듣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차피 확진이 나온다면 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디데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아침부터 단 한 마디도 없으셨습니다. 그저 저 혼자 평소처럼 일상 대화를 간신히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병실 문을 열었습니다. 의사분은 저를 보더니 빙긋 웃으셨습니다.
"축하드려요 아드님. 검사 결과 이상 없습니다.
어머니 모시고 여행 다녀오고 싶다고 하셨죠?
다녀오셔도 괜찮습니다."
온몸에 긴장이 풀렸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그제서야 감사하다는 말씀을 거듭 드리기 시작했고, 의사 선생님 역시 웃으시면서 검사 받느라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인간 관계에 대한 이론들, 지식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된 것 같아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거 봐 엄마. 별거 아니라고 했잖아' 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려 노력했습니다.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저의 마지막 행동 지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스스로의 목소리가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의사분과 간호사분이 저를 향해 미소를 짓는 게 느껴졌습니다.
병실을 나와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든 일이 잘 풀린 것 같다며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간만에 가족끼리 외식을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저히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잠시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고서, 병원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가방에서 빼곡하게 밑줄이 그어진 치매에 관련된 책 2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을 보니 검색창에는 온갖 치매에 관련된 내용뿐이었습니다. 지난 몇 주간 얼마나 피폐하게 살아왔는지가 그제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감정을 배제하고 버텼던 순간들이었습니다. 결국 몇 십 분간 저는 화장실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얼른 나오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못하고, 저는 아주 긴 시간반복해서 세수를 해야만 했습니다.
끝으로
아트라상의 칼럼 중 역대급으로 공감수와 댓글이 많은 칼럼이었습니다. 재회와 직접 연관이 있지도 않은 이번 주제가 이토록 많은 분들의 관심을 끌 지는 몰랐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응원 댓글을 남겨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예전 생각이 많이 나서 울면서 글을 썼네요.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번 글을 읽으시고 '지식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의지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연애를 유지하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트라상의 상담 철학이기도 합니다. 최대한 확률을 높여드리고 지침 하나로 바로 재회를 시켜드릴 순 있지만, 유지를 잘 하는 것은 내담자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손수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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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8년간 상담을 하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의 이야기를 써 볼까 합니다. 상담사의 사적인 이야기는 결코 오픈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공개하네요.
제가 갖는 상담 철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네가 할 수 없는 것을 남에게 요구하지 말아라' 입니다. 상담을 받는 사람들에게 '이성을 찾아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저는 사기꾼이랑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모르겠지만 오래된 내담자 또는 개인적으로 저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흥미로우실지 모르겠군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사용하는 모든 상담 기법, 재회심리학 이론들을 다 도입해서 문제를 해결한 케이스라 보여지기도 합니다.
종종 제가 재회 상담에서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지침을 설명 드리면, 아주 극소수의 내담자분들은 예의상 겉으로는 절대 티내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갖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그게 맞다지만..너라면 몇 년을 사랑한사람에게 그런 문자를 보낼 수 있어? 남의 일이니까 강하게 나가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넌 그래 본 적 있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되는 칼럼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의 일이라고 쉽게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을 백 번 이해하지만, 그래도 재회 확률을 높이기 위해 저 역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억을 찾아서
2015년에 저에게 상담을 신청했던 분들은 기억하실 지 모릅니다. 제가 처음으로 모든 상담을 1주일 뒤로 미루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당시 저에게 모든 상담이 몰려 있어서 3주 가량 상담이 지체되고 있었는데, 한 분 한 분 양해를 구해가며 전화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죄송하네요.
심리학을 토대로 인간 관계를 다루는 사람으로서는 부끄럽지만, 어머니와 30분가량 전화로 크게 다투었습니다. 거의 모든 일상이 상담에 집중되어 있고, 지침을 수없이 구상하고제시할 때이니, 어머니에게 얼마나 독하게 얘기했는지 모릅니다.
불편한 전화를 마무리하고, 10분 뒤 어머니가 전화를 다시 하셨습니다. 화해를 요청하는 줄 알고 '미안했어 엄마' 하고 전화를 받자, 어머니가 되물으시더군요.
"혹시 내가 방금 너와 전화 통화를 했었니?"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일단 '아 그냥 잠깐 사소한 통화했었는데 별것 아니었다. 나도 엄마한테 지금 들으니까 생각났다'고 어영부영 안심시킨 뒤, 전화를 끊었습니다.
30분간 서로 초집중하여 다퉜는데 아예 통화한 사실 자체를 잊으신 것입니다. 여러 차례 되물으셔서 정말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별 일 아닌 것 같아 보이실 수 있겠으나,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난생 처음 본 상황에서 도저히 침착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이별 통보를 받은 것처럼 펑펑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오듯이 어머니는 이제 모든 기억을 잃어 가실 것이고, 끝내는 저의 이름조차 잊고 살아갈 것이라는 불안감에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왜 굳이 그런 못된 말만 골라서 했던 건지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당장 10분 뒤에 예정된 상담을 도저히 진행할 수 없어 거듭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상담을 미룬 뒤 혼자 생각에 잠겼습니다.
혼자 울기를 몇 시간을 반복하고, 저는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명색이 수석상담사이고, 패닉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성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담자들에게 '재회는 떠먹여드릴 지 몰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누누이 말하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내가 못하는 걸 남한테 시키는'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성을 찾아야 했습니다.
일단 당시에 〈이상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대로는 '치매'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병은 아니었습니다. 평소에 어머니의 미세한 행동이나 언어습관 등을 보았을 때, 전조 증상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지속적으로 글을 다루고 머리를 써야 하는 직업군에 속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상황은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소망적 사고'일 수 있었습니다. 저 혼자 어떻게든 희망 회로를 돌려서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재회 상담을 몇 년간 하면서 느낀 것은 어떤 분야든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고 결론을 내리는건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심리학을 아무리 공부했다고는 하나, 정신과 의사분의 의견보다 제가합리적일 순 없었습니다. 결국은 병원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전화를 마무리했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당황한 미세 목소리나 어투에서 불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당연히 통화 목록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저보다 훨씬 더 빨리 부정적인 결론에 다다랐을 것입니다.
여기서 병원을 가자고 권유하는 것은? 어머니 입장에서 100% 거절할 것입니다. 치매 확진이 예측되는 상황에 병원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내담자들을 숱하게 만나왔기 때문에, 어머니의 감정을 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⑴ 1주일간 어머니에게 절대 연락을 하지 않고, 가족 단톡방에서만
아무 일 없는 듯 말했다
⑵ 바로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고 병원을 예약했다
⑶ 어머니가 할 대사들을 미리 예측하여, '카운터 펀치'를 미리 준비했다
그러나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상황은 악화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위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하나 그 근거에 대해 설명을 드려 보겠습니다.
첫째로, 어머니는 이미 저보다 훨씬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저까지 심각해지고, 불안해한다면? 어머니는 절대 좋은 생각을 갖지 못하실 것입니다.
이는 설령 어머니가 이미 실제로 심각한 치매에 걸리신 상태였다고 해도 좋을 리가 없습니다. 더 악화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천하태평한 느낌을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단톡방에서 재밌는 뉴스 거리나 공유하고, 아버지에게 종종 농담을 던지면서 대화만 이어갔습니다.
(당연히 아버지에게는 모든 상황을 공유하였고, 절대로 어머니를 흔들지 말고 저의 작전에 장단을 맞춰 달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어떤 말도 없으셨지만, 3일, 4일이 지나면서 점차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냥 '없던 일'처럼되어 버린 것입니다. 실제로 그 이후에 증상이 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도 '그냥 한 번 그랬던 건가보다' 생각하시면서 점차 농담에도 참여하시고 웃는 비율이 늘어났습니다.
이것으로 1차적으로 어머니를 안정시켰고, 병원에 모셔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안정을 찾는 대로 '집밥 좀 먹고 싶다'는 핑계로 몇 달만에 본가를 찾았습니다.
둘째로, 저는 어머니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로 미리 대학병원의 교수님께 예약을 해 두었습니다. 어머니는 어차피 제가 어떠한 논리를 세워도 거절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은 '내가 정신 질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매우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머니 역시 다를 리 없었습니다.
심리학에 '문간에 발 들여놓기' 라는 기법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병원에 가자. 어서 빨리 예약하자' 라고 말한다면, 거절하실 것입니다. 너무나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약이 되어 있으니 가야 한다' 라고 말한다면, 예약을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사라지게 됩니다.허들이 하나 사라지면서 거부감이 덜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 입장에선 무엇이든 불편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검사를 받아서 나쁠 건 없었습니다. 저 역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지만, 최대한 병원에 빨리 가는 게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유리할 것이 확실했습니다.
어머니는 당연히 취소하라고 난리가 나셨고, 저는 담담하게 카운터 펀치들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면서도 심장은 쿵쿵 뛰고 미칠 것 같더군요. 내담자들이 행동 지침을 수행할 때 떨리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셋째, 카운터 펀치. 어머니는 저의 예상 범주 내의 반론을 시작했고, 저는 천천히 카운터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포인트는 준비하지 않은 것처럼, 그냥 즉석에서 나온 것처럼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웃기도 하고, 일부러 톤을 낮추고, 말의 속도를 느리게 하며 무의식 중에 어머니를 안심시키며 답변을 해 나갔습니다.
1
어머니 | "도대체 왜 별 것도 아닌 일로 대학병원까지 검사를 신청했냐! 난 갈 수 없다!"
손수현 | "그렇지. 엄마가 나 어릴 때 별것도 아닌 일로 주사 맞히러 갔던 거랑 똑같잖아. 그냥 가는 거야.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나도 얼마전에 종합 검진 갔다 왔는데 그거랑 같은 거야 엄마."
해석
정신과 진료를 받는 일 = 어릴 때 아들을 주사 맞히러 병원에 데려갔던 일 수준으로 떨어뜨림으로써 거부감을 줄임
2
어머니 | "엄마가 정말 치매면 어떡할 거니.. 그 땐 양로원에 꼭 넣어라"
손수현 | "진짜 별 말을 다한다 엄마. 당연히 그러긴 해야지? 근데 그럴 확률은 없어. 이미 모든 의료계 종사하는 내담자분들한테 따로 다 물어봤네요. 그 때 자세한 상황까지 다 얘기했어.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그냥 일시적으로 발현하는, 우리 입장에선 당황스럽지만 전문가분들 관점에선 흔한 증상이래."
그리고 내 친구 진원이 어머니도 아예 증상이 똑같더만. 그냥 갔더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여행 좀 다니라고 진단받고 왔더라. 소설 좀 그만 써 엄마(웃으면서)"
해석
의료계 종사하는 내담자 분들의 권위 있는 증언을 토대로 신뢰를 쌓음. 또한, '내 친구 어머니도 똑같다'는 기법을 통해 거부감을 줄임. 많은 사람들은 과학적 이야기보다, '내 주변 누구가 갔다 왔더라!' 한 마디를 더 신뢰하기도 한다.
3
어머니 | "엄마가 너에 대해서 다 잊어버리면 넌 어떻게 살거야?"
손수현 | "글쎄... 엄마 미안한데 난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이 안되네? 만약 그렇다고 해도 난 잠깐 슬퍼도 그것대로 그냥 살 거 같은데... 내가 공감 능력이 없는 건가? 뭔가 그냥 나는 내 인생 살고 종종 엄마한테 '나 엄마 아들이오' 그 때 그 때 알려주면 되잖아?"
해석
어머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자신이 모든 기억을 잊게 되면, 혼자 남은 아들은 미친듯이 슬퍼할 것을 불안해한다. 따라서, 싸이코패스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아들은 오히려 담담해야 한다.
몇 번 대화를 나눈 뒤, 어머니는 약간은 이성을 찾은 듯 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아들이 생각하기에 확률은 어떠한 지를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정신과 진료의 전문가가 아니지만, 무언가 담담한 모습에 믿음이 생기면서 저에게 의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며칠간 미친듯이 연구한 것들을 토대로 담담하게 '그럴 확률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 그때서야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제가 어머니를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바로 괜찮을 확률과 그 근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면, 어머니는 '병원에 가게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희망적인 말만 골라한다'고 의심하며 저를 믿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긴 대화를 끝내고, 어머니는 무언가 안심을 하신 듯이 웃으며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내일 병원에 가기 전 어머니가 갑자기 돌연 취소하실 수 있으니, 일어났을 때 '평소와 늘 같은 날처럼 느끼시게끔' 모닝 커피 한 잔을 꼭 준비해주세요" 라고 말한 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도저히 아버지의 기분까지 챙길 여력은 없었습니다.
자리에 눕자 어머니에게 했던 마음에도 없던 말들이 떠오르면서 미친듯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가 정말 기억을 잊게 된다면 도저히 쿨 할 자신은 없었습니다.
과거 내담자 시절 했던 것처럼, 저는 제가 가장 이성적일 때썼던 상황 분석 글을 읽으며 애써 이성을 찾았습니다.
안타까웠던 것은 너무나 힘든 상황인데 누군가에게 전화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위로는 받을 수 있겠지만, 오직 저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 난감한 것은, 병원에 가기 전 저는 당장 상담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사연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천만다행인 것은 쉬운 케이스들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확률 진단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마주하다
30분간 전화를 통해 싸웠던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린 어머니를 위해, 저는 심리학적으로 몇 가지 전략을 세웠습니다. 처음엔 결사반대를 하셨지만, 다행히 전략이 먹혀 들어 어머니는 병원행에 동의하셨고, 차를 타고 병원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너 그거 기억나니? 옛날에 어릴 때 네가 덮는 이불에 네가 이름 붙였었잖아. 포근하고 따뜻해서 '양털이' 라고 불렀는데..."
"너 고등학교 때가 생각나네. 그 때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주제로 글을 써서 장관상 받았다고 좋아했잖아"
"예전에 우리 가족 다 같이 제주도 여행 갔을 때..."
어머니는 과거의 기억들을 필사적으로 꺼내고 계셨습니다. 오랜 기억들을 꺼내어, 자신이 치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가슴이 더욱 아파왔습니다. 코가 시큰하고 눈물이 당장이라도 뚝 떨어질 것 같은 것을 참으며, 억지로 웃으면서 분위기를 맞춰가며 병원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유명한 대학병원이니 당연히 예약은 밀리게 되었고, 초조함은 가중되었습니다. 드디어 어머니의 이름이 호명되었고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진료실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정신과 의사분께서는 상황을 듣고 몇 가지 질문을 하신 뒤, '일시적인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정확한 건 검사를 해봐야 알겠습니다'라고 짤막한 답변을 하셨습니다. 이는 제 입장에서 예상 범주 내였습니다.
의사분들은 다소 보수적으로 답변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기 때문입니다. 낮은 확률로 큰 병일 수도 있는데 검사를 하지 않아 이를 진단해내지 못한다면 병이 커질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여 환자를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 때 옆에 계셨던 아버지가 불쑥 말을 꺼내셨습니다.
"그래서 병원비 보험 처리는 어떻게 됩니까?"
저는 크게 당황했습니다. 어머니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다보니 미처 아버지를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저에게는 '검사를 해봐야 안다'는 전문가의 진단이 당연한 것으로 느껴졌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달랐을 것입니다.
부모님께서는 '그냥 큰 병 아닙니다' 라는 말을 듣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의사분의 진단이 야속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일종의 '자존심 발동'이 되어 대뜸 어떠한 질문도 없이 병원비 보험 처리를 먼저 여쭌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 이는 의사분께 큰 실례라고 느껴졌습니다.
당연히 의사분의 표정은 순간 크게 굳었고, "간호사와 얘기하세요. 나가보시구요." 라는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었습니다. 제가 손수현 상담사로서 상담을 7년간 진행하면서 느꼈던 것이 있었습니다. 전문가가 내리는 진단은 야속하더라도 전문가의 탓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분석해주는 의사분께 그 책임 소재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의사분과 적대적인 관계를 지게 된다면, 앞으로의 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이 없었습니다. 설령, 최악의 상황이라도 앞으로 치료를 주기적으로 받을 수도 있는데 얻을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급하게 "어머니 아버지, 먼저 나가 주시겠어요? 그리고 선생님.. 괜찮으시다면 저에게만 혹시 2분의 시간 정도를 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의사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고, 부모님은 진료실 방문을 나가셨습니다.
저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우선 저희 아버지께서 크게 결례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려 주시기 위해서 검사를 하자고 하신 것이고, 도와 주시려고 하신 말씀인데.. 아버지가 이런 큰 병원에 오시는 게 오랜만이다보니 크게 긴장하셔서 그런 말이 불쑥 나온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해도 정말 큰 실례입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그런데도 귀한 시간을 2분 정도 따로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많이 바쁘실 것 같아서 몇 가지만 여쭤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어머님께서는 안전한 진단을 받고 싶으셔서 거짓말을 하셨지만, 음주를 꽤 오랜 시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단에 혹시나 영향을 미칠까 하여 질문을 드립니다.
둘째로, 저희 집안에 유전력은 따로 존재하지 않긴 합니다. 외갓댁에서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분들은 따로 계시지 않았고, 어머님이 이런 증상을 보이신 것도 평생 처음이긴 합니다.
셋째로, 전문가이신 선생님께 제가 감히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아주 혹시라도 부담감을 느끼신다면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꼭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저렇게 말씀하셨다고 해도 제 입장에선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저희를 도와주시는 분이시고, 저는 오늘 진단을 해 주신 것만으로, 시간을 내 주신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의사분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으시곤, 한참을 가만히 계시다가 한 마디를 남기셨습니다.
"아드님이 참 효자시네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하지 않으셨던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환자의 입장에선 많이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정신과 의사 일을 하시면서 너무나 많이 보는 케이스며, '일과성 기억상실' 로 매우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일 것에 가까울 것이라는 점도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음주 하나의 변수만으로 전반적인 진단이 모두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얘기도 해 주셨습니다.
저는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거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고개를 숙이고는 진료실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이 사실을 전달해 드렸고, 의사분이 그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침착하게 이야기를 들으시곤, 고개를 끄덕이셨고 '생각해보니 정말 죄송한 일이구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검사를 받는 동안 며칠간 병실에 입원을 하게 되셨고, 저는 시종일관 유쾌한 이야기들로 기분을 풀어드리려 노력했습니다. 그 시기에도 집과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상담을 진행하였고, 안타깝지만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따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저의 노트북 검색창에 '부모님 여행지' '어머니 선물', '일과성 기억상실'이 하루하루 늘어갈 뿐이었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날 밤, 저는 이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마지막 행동 지침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확진이 나오더라도 최대한 어머니의 스트레스를 덜어드릴 수 있게끔 모든 제 지식을 총동원했던 그 때의 간절함만 기억이 납니다.
또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혼자 가야 하는가 온갖 생각들로 복잡했습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해도 들킬 가능성이 커 보였고, 결국 같이 들어가서 진단을 듣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차피 확진이 나온다면 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디데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아침부터 단 한 마디도 없으셨습니다. 그저 저 혼자 평소처럼 일상 대화를 간신히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병실 문을 열었습니다. 의사분은 저를 보더니 빙긋 웃으셨습니다.
"축하드려요 아드님. 검사 결과 이상 없습니다.
어머니 모시고 여행 다녀오고 싶다고 하셨죠?
다녀오셔도 괜찮습니다."
온몸에 긴장이 풀렸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그제서야 감사하다는 말씀을 거듭 드리기 시작했고, 의사 선생님 역시 웃으시면서 검사 받느라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인간 관계에 대한 이론들, 지식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된 것 같아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거 봐 엄마. 별거 아니라고 했잖아' 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려 노력했습니다.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저의 마지막 행동 지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스스로의 목소리가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의사분과 간호사분이 저를 향해 미소를 짓는 게 느껴졌습니다.
병실을 나와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든 일이 잘 풀린 것 같다며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간만에 가족끼리 외식을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저히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잠시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고서, 병원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가방에서 빼곡하게 밑줄이 그어진 치매에 관련된 책 2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을 보니 검색창에는 온갖 치매에 관련된 내용뿐이었습니다. 지난 몇 주간 얼마나 피폐하게 살아왔는지가 그제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감정을 배제하고 버텼던 순간들이었습니다. 결국 몇 십 분간 저는 화장실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얼른 나오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못하고, 저는 아주 긴 시간반복해서 세수를 해야만 했습니다.
끝으로
아트라상의 칼럼 중 역대급으로 공감수와 댓글이 많은 칼럼이었습니다. 재회와 직접 연관이 있지도 않은 이번 주제가 이토록 많은 분들의 관심을 끌 지는 몰랐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응원 댓글을 남겨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예전 생각이 많이 나서 울면서 글을 썼네요.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번 글을 읽으시고 '지식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의지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연애를 유지하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트라상의 상담 철학이기도 합니다. 최대한 확률을 높여드리고 지침 하나로 바로 재회를 시켜드릴 순 있지만, 유지를 잘 하는 것은 내담자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손수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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